10000일, 93000시간 , 33년의  고행

 

어느 우체부가  만든 '꿈의 궁전'

 

 

 


'페르디낭 슈발(Ferdinand Cheval)' 이 이름은 아주 오래 전 프랑스
한 시골 마을의 중등교육도 마치지 못한 어느 우체부의 이름이다..
허나 지금 이 이름은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이름이 되어 있다..

프랑스 남부 리용에서 조금 더 떨어진 오트리브에는  돌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궁전을 하나 발견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Lo Palais ideal du Factcur Choval(우편배달부 슈발의 꿈의 궁전)
이라고 씌여 있다...

 

 

 

 

 

 


1836년에 태어난 슈발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는 13세 까지만 다녀야
했다.. 그리고 농부로  우체부로  살아온 세월 

1879년 슈발이 43세 때까지는 그랬다..


그는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우편물을 배달하다가는 발에 걸린 돌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돌 하나는 그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핵에 불씨를 붙였다..
그는 돌줍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돌들은 그의 마음 속에서 아름다운 궁전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체부의 꿈의 궁전 ,
어쩌면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 길이 그렇게 길고 긴 고행의 길이었을 줄은...

 

10000일, 93000시간,
그 길은 33년의 길고 긴 장도의 길이 되었다..

 

 

 

 

 

 (그가 사용했던 외발 수레)

 

 

 

『 나는 나의 꿈속에서 동화의 궁전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상상력을 초월한 상태에서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었다
  (작은 동굴, 정원, 탑, 성채, 박물관과 조각 등).
  여기에서 나는 원시시대의 모든 건축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만화경처럼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최소한 10년 정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꿈과 현실간의 거리는 정말 멀기만 했다
그것은 내가 건축의 원리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미장이의 흙손조차 써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의 말처럼 그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우편배달부의 일을
했으나 아는 것이라곤  농부일과 집배원 일 뿐.. 
헌데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도대체 꿈의 궁전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꿈의 열정이 이루어낸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 할 길이 없다..

 

 

 

 "이 곳을 지나면서,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한 농부가 이루어
  놓은 것이다.
  나의 꿈으로부터 나는 이 세상의 여왕을 끌어낸 것이다."

 

궁전의 입구 정면에는 저 글귀가 씌어 있다고 한다..

 

 

 

 

『  나는 파헤쳤네
    이 동화의 궁전이
    땅 속에서 솟아오르도록.
    내 꿈의 이름으로, 나의 육신은 모든 것을 받아 들였다.
    시간,  조롱,  세월.
    인생은 한 마리의 재빠른 군마
    그러나  내 꿈은  이 돌 위에서 영원하리. 』

 

 

 

 

  

 

 

 

  

  

  

 


그 작은 돌멩이 하나는 그의 잠들어있던 꿈을 깨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활화산처럼 타올라 그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돌멩이를 줍기 위해 이전 보다 매일  하루에 10킬로 이상을 더 걸어야
했으며 헛간에서 잠들어야 했고 그 기간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외아들도
사별해야 했다..

그리고 1912년 그는 비로소  궁전을 완성 할 수가 있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내 자신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들과 아내의 묘역으로 그곳을 쓰고자 했으나
정부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아 그 근처에 다시 묘역공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공사는 7년여를 끌어 그의 나이 80이 넘어서야 끝나게 된다..

 

(묘역)

 

 

 

 

그리고 1922년 그는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기 위한 글이었을 게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924년 여름 자서전은 완성 되었고..
그리고 몇일이 지난 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24년 8월 19일 슈발은  고단하지만 행복했던   긴 인생고행을
마치고 영원한 잠에 들었다..

지금은 아주 유명한 명소가 되어  매년 12만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며 박물관 도 설립되었으며  여러 상점들도 들어선 번화한
곳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마을 입구 어귀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씌어 있다고 한다..

 

  

 

[ 우편배달부의 강인한 인내와 미적 감각이 잘 표현된 작품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오트리브를 지나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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